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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 관련해서 박노자 교수님이 좋은 글을 써 주셨네요 박노자교수의 일침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카테고리 없음 2019. 12. 7. 16:40

    것이었다. 내가 한국을 처음 찾은 1991년에는, 격차의 존재는 뚜렷했다. 값이 계속 오르기만 하는 내 집을 갖고 있는 중산층과 전세, 월세방 신세인 노동자가 각각 체험하는 현실은 천양지차였다. 1980년대 말은 민주화 투쟁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땅값 급등의 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국제결제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1988년과 1991년 사이만 해도 한국의





    시절에는 도대체 뭘 했을까요? 그땐 청와대 앞에 와서 데모하셨나요? 4대강 사업만 해도 23조인가 낭비한 것인데, 그 돈을 건설업자들이 훔치지 않고 복지 증진 등에 썼다면 우리가 그래도 좀 나은 사회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환경 파과 효과는 엄청났지만요. 저는 장관이 잘 할는지 어찌 할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리 못한다 해도 그게



    동시에 돈에 대한 욕망은 노골화됐다. 2000년대 초반에 흔해진 “부자 되세요!”와 같은 인사말은, 1990년대 초반에는 거의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 돈 내고 노동야학에서 가르쳤던 이야기는 이제 그야말로 ‘먼 과거의 전설’이 되고, 오늘날 많은 대학 ‘교수님’들은 특강 요청을 수락하기 전에 강의료 액수를 꼼꼼히 확인하고, ‘싼’ 강의를 사양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되는, 돈 욕심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이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돈 욕심뿐만이 아니다. 돈 없는 사람에 대한 노골적 멸시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가끔 격차가 최근에 생긴 문제인 양 논해지기도 하지만, 사실 사유재산 본위의 사회인 만큼 애당초부터 있었다. 6·25 직후의 사회에서 극소수의 부호나 고위직 관료와 절대 빈곤 상태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한국인 다수 사이의 격차 폭은 오늘보다 더 컸다. 1964년에 개봉된 김기덕 감독의 유명한 영화 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가 그린 것은 저잣거리 폭력배 서두수와 고위 외교관의 딸 요안나 사이의 꿈같고 동화 같은 사랑이다. 이

    같은 인사말은, 1990년대 초반에는 거의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 돈 내고 노동야학에서 가르쳤던 이야기는 이제 그야말로 ‘먼 과거의 전설’이 되고, 오늘날 많은 대학 ‘교수님’들은 특강 요청을 수락하기 전에 강의료 액수를 꼼꼼히 확인하고, ‘싼’ 강의를 사양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되는, 돈 욕심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최근 몇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한국 영화인 은 이 상황을 영화의 언어로 핍진감 있게 잘 그려냈다. 기택의 가족도 문광과 근세 부부도 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약자·서민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협력이나 연대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불가능하기만 한 ‘신분 상승’을 목표로 두고, 그들은 수단과

    가정의 가장이나 그의 어린 아들에게는 가난한 기택의 가족 전원은 다름이 아닌 ‘몸 냄새’로 식별된다. 거의 태생적인, 아무리 씻어도 씻겨지지 않는 ‘빈곤의 냄새’는 새로운 ‘열등 인종’으로서 빈민의 징표가 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빈부 차별이 과거의 반상 차별을 넘어 이미 거의 인종주의적 차별만큼 철저해졌다는 이야기다. 돈을 덜 버는 사람이 인간도 아닌 벌레, ‘이백충’으로 불리고 돈이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 서로 조금씩 정견을 달리한다 해도 ― 만인 평등, 만인 존엄, 빈민을 불가촉천민으로 만든 사회·경제적

    하지요. " S모대 K모대 학생분들, 조국 딸에게 불만을 가지는게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하는게 지식인으로서의 당연한 입장 아닐까요? [박노자교수 페북에서 퍼온 글] 참, 이해가 안되어도 너무 안됩니다... 이 분들은 4대강 죽이기 시절이나 박근혜 정권 밑에서 개성공단을 때려치우고, 이석기 전 의원 등의 양심수들을 양산했던

    생태계의 대대적인 파과와 23조 낭비와는 그 경중이 비교되는 사항인가요? 그런데 그 때에 침묵했던 사람들이 지금 - 하등의 위험 부담하지 않고 -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의아하기만 합니다. 저는 조 장관이 관직 수행을 어떻게 하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전 정권이 납치한 12명의 북조선 식당 종업원들에게 가족들과의 연락을 가능케 하고, 나아가서 그 가족 재결합권 등 인권 실현에 힘을 썼으면 하는데, 리버럴 정권의 한계가 많아

    사회가 된 것이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돈 욕심뿐만이 아니다. 돈 없는 사람에 대한 노골적 멸시도 이제는 더 이상 패륜이 아니고 그저 일상일 뿐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신조어들을 듣게 되면 아연실색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휴거’(휴먼시아,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임대주택에서 사는 거지), ‘빌거’(빌라에서 사는 거지), ‘임거’(임대아파트에서 사는 거지) ‘월거지’(월셋집에서 사는 거지), ‘전거지’(전셋집에서 사는 거지), ‘엘사’( LH,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주택에서 사는 사람), ‘이백충’(한달에 200만원 이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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