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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정치국장 실검 1위도 그렇고 뭔가 드라마 보면서도 기분이 묘해 ㅋㅋㅋ 총정치국장 실검3위 이모님들
    카테고리 없음 2019. 12. 21. 07:50

    기석복(로동신문 주필) 김승화(내각사무국장·건설상) 김렬(함북 도당위원장·공업성 부상) 허빈(황북 도당위원장) 김동철(최고 재판소 부소장) 김찬(조선은행 총재·재정성부상) 김영수(도인민위원회 위원장) 박영(도당위원장) 정국록(민주조선 주필·정전위 수석대표) 고히 만(임업상·중앙당 부장) 박창식(자강도인민위원장) 안동수(사단정치부장) 이동건(외무성 부상) 등이다. 제4진은 기술자 및 간부그룹으로 46년 여름 평양에 도착했다. 남일(인민군 총참모장·외무상·내각부수상) 장익환(교육성 부상) 김동학 (최고검찰소 부소장) 박원무(전기성 부상) 김영삼(전기성 부상) 김학인 (내각호위처장) 박일(김일성대 부총장) 김이노겐치(건설성 부상) 천치억 (도로국장) 이문일(조선통신사 사장) 정철우(기갑여단장) 장주익(과학원 서기장) 등 36명이다. 제4진에 이어 1개월후인 46년 9월 입북한 제5진은 주로 러시아어 교원그룹 20명. 박병률(강동정치학원장) 주광무(내무성 예심처장) 오기흥(체신성부상) 박라오니드(수송대 대장)

    한인인데다 정치적 식견이 높고 성격이 원만해 인간적으로 그를 신뢰했습니다. 고당이 45년 10월 하순께 고향에서 잡아온 꿩 두마리를 들고 찾아와 북한 정국을 논의하기도 했었다는 말을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강소좌의 부인 루드밀라 여사(67)로부터 들었습니다. 또 전동혁·조기천·임하·김세일 등 문필가들은 평양역전에 소련군 신문사를 조직하여 한글신문을 발행,인민들에게 「김일성장군」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았지요. 전동혁은 45년 10월14일 「김일성장군 환영대회」의 김일성 연설문을 직접 작성한 사람이지요.』 제2진은 10월 중순 평양에 도착했다. 소련에서 주로 사범대학이나 러시아어학과 등을 졸업한 박영빈·김일·박길용·박태섭·허학철·천률·박춘·김단·천의완·오표돌·박태준 등 모두 53명이었다. 북한에서

    김일성과 함께 입북한 「빨치산파」등 60여명은 제외된 것입니다.』 ○문필가들은 홍보역 생존 소련파 인사들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제1진은 40여명. 정률(해군군관) 최종학(소련군 대위) 최흥국(소련군 대위) 최표덕(소련군 중좌) 정학준(소련군 군관) 최왈렌친(소련군 상위) 소련군의 성원으로 45년 8월9일부터 시작된 대일 전투에 참가한 인사들과 박창옥·한일무·이학용·김원길·김성훈 등과 같이 대 일전에 앞서 북한에 파견돼 첩보공작을 하던중

    ▲심수철(인민군 간부국 부국장) ▲황성복(전시 군사교육처장) ▲김세호(원산 해군학교 교장) ▲유성걸(인민군 대좌) ▲송원석(평양시 당부위원장) ▲장김수(평양시 내무서장) ▲정상진(문화성 부상) ▲이영파(인민군 대좌) ▲박태화(중앙당학교장) ▲박일(김일성대 부총장) ▲남봉식(방송위원장) ▲이황용(인민군 병기국장) ▲김세일(조선신문사 기자) ▲명월봉(김일성대 교수) ▲최학일(인민군 소장·군단 군사정치위원) ▲박병율(강동정치학원장) ▲오기흥(체신성 부상) ▲장돈야(여·김일성대 교수) ▲강소피아(여·중앙당학교 교원) ▲김이딸리(건설성 기사) 이상. 끝. 제 20편에서 계속~~ 왜 남주가 북한장교이며 북한군 서열1위 총정치국장의 아들인지 ㅋㅋㅋ 그것도 현빈이야 드라마 나오는 현빈 아버지가 북한 총정치국장인데 얼마나 파워가 좋은지 외제차 타고 다이렉트로 신호도 무정차

    『북한정권에 참여,김일성을 도우라는 소련정부의 지시를 받고 평양에 도착하니 「김일성 장군」이 소련군에 의해 인민들에게 애국투사로 부상되어 있더군요.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민족민주진영·기독계 인사·젊은층 등의 소비예트화 거부와 가짜설, 김일성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만만치 않더군요. 도착과 동시에 나는 소련 25군 정치사령부에서 통역 및 내근요원을 맡았기 때문에 당시 북한정세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지요. 소련군 수뇌부는 조만식 선생을 끌어들이는데 안간힘을 쏟았지요. 그러나 조만식 선생은 자신의 민족·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많은

    총정치국장 실검3위 북한 독재 괴물 인민공화국.19편.북한건국과정.역사 총정치국장 실검 1위도 그렇고 뭔가 드라마 보면서도 기분이 묘해 ㅋㅋㅋ 이모님들 화력에 총정치국장이 검색 1위되었네요 ㅋㅋㅋ 총정치국장 실검 떴네요. 북한 군부 서열2위래요. 현빈이 톱 오브 톱이었구나. 소련파 입북 ◎김일성 집권 터 닦은 「정치일꾼」/소 지시로 5차례 2백여명 평양 도착/50년대초까지 당·행정기관 요직 장악 해방초기 소련군정을 지원하고 김일성 빨치산파와 함께 북쪽을 통치해나간 중심세력은 소련파였다. 소련국적이거나 또는 소련에 살고 있는

    해방을 맞이한 인사 등이다. 또 45년 8월29일 소련 진주군 제25군의 7부(군정치부)와 함께 평양에 들어간 강미하일 소좌·오기찬 대위 등 소련군인과 전동혁(시인) 조기천(시인) 임하(극작가) 김세일(소설가) 김원봉 김성화 박기호 이봉길 등 민간인 28명이 포함된다. 정부주필의 증언 계속. 『이들중 강소좌는 초기 「통역 정치시기」때 소련군 사령부와 북한지도자들을 연결시키는 다리와 같은 존재였지요. 그는 조만식 선생을 도와 평안남도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김용범·오기섭·박정애 등이 조선공산당 분국을 조직할 때도 산파역을 맡았습니다. 조만식 선생도 그가 소련 25군 정치부내의 유일한

    45년 8월 하순부터 46년 9월까지 북한에 파견돼 직·간접으로 김일성 정권을 도왔던 한인들은 줄잡아 2백여명. 그후 50년대 중반까지 개별적으로 입북한 인사들까지 합하면 모두 4백27명이라는 증언도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북한에서 문화성 부상을 지내다 57년말 소련으로 되돌아가 소련 카자흐공화국 수도 알마아타시에 있는 한인신문 고려일보 부주필로 있는 정상진씨(73·일명 정율)의 증언. 『정치일꾼으로 참여한 이른바 정통 「소련파」 2백여명은 편의상 입북시기를 기준으로 1진부터 5진까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은 소련군 88특별여단 소속으로

    지식인들과 지주·청년층이 그를 추앙했습니다. 이에 당황한 소련군 지도부는 소련정부에 공산당 조직과 정칟행정경험이 있는 소련의 한인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요. 이 그룹이 바로 소련파 제3진에 해당됩니다.』 제3진이 평양에 도착한 것은 45년 12월 초순. 전반적으로 제1,2진보다 비중이 높은 간부들이 많아 이들은 북한에 가서 당과 국가기관에서 중요한 직책을 담당했다. ○3진에 거물들 많아 허가이(당부위원장) 박의완(내각부수상) 방학세(사회안전상) 김재욱(평 남도당위원장·군총정치국장) 강상호(내무성 부상) 이춘백(군정찰국장) 김 택영(사법성 부상)

    외무성 부상을 지내다 59년말 소련파로 몰려 자진귀국형식으로 소련으로 되돌아가 소련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는 박길용 박사(73·모스크바시)의 증언. googletag.cmd.push(function() { googletag.defineSlot('/65120695/m_view3', [320, 100], 'div-gpt-ad-1571364010595-0').addService(googletag.puba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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